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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4 오전 9:18:54 입력 뉴스 > 탐방

[탐방]백두대간 단독 종주기





 

새벽 4시. 지리산 해돋이를 보기위해 천왕봉에 오를 준비하느라고 부산을 떠는 소리에 떠밀리듯 덩달아 일어났다. 잠을 조금 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듯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배낭을 챙기는 동안 나는 간식을 먹고 4시 15분에 산장을 나섰다. 남을 도울 일도, 도움을 받을 것이 없으니 조용히 일어섰다. 다른 사람에게 같이 나가자고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혼자 나서기만 하면 되었다.

 

법계사 옆을 지나 모롱이를 도니 고양이 한 마리가 달아나지도 않고 힐끔힐끔 뒤돌아보며 10여m 앞에서 걸었다. 살쾡이가 아닌가하고 헤드램프로 비쳐 보았으나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법계사 뒤쪽 바위 능선에 올라서니 바람이 휘몰아쳐 몸이 날아갈 듯 휘청거렸다. 기어가듯 몸을 바싹 낮춰 걸었다. 뒤따라오는 사람도 없었다. 마음은 아프게 저려오는 행복감으로 가득 찼지만,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인지 몸의 움직임이 무척 둔하게 느껴졌다.

 

얼마 안가 뒤따라 올라온 세 젊은이가 앞서갔다. 1시간 만에 개선문 앞에 홀로 섰다. 그동안 자주 보아왔지만 이날 처음으로 달밤에 본 개선문은 더욱 크고 웅장해 보였다. 임자령을 넘어 천왕샘에 도착한 것이 5시 48분.

 

산신들에게 백두대간 단독종주를 알리는 고신제(告神祭)를 지내야 하는데 차릴 것이 없었다. 천왕샘의 찬물 한 컵을 떠놓고 “지리산에서 설악산까지 백두대간의 모든 산들에 주석하는 산신들에게 알립니다.

 

 서기 2002년 10월 22일 부산 연제구 연산9동 주공아파트 117동 108호 이종길이 백두대간 단독 종주를 시작합니다. 모든 산신께서는 백두대간 마루금을 오르내리는 산악인들이 산행을 안전하게 끝내도록 보호해 주십시오.

 

그리고 하루 빨리 남과 북이 통일되어, 진부령에서 잘린 백두대간이 이어져 우리 산악인들이 백두산까지 오를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하고 고제(告祭)를 지냈다.

 

바람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기승을 부렸다. 삼천포 너머 남해의 구름 한 점 없는 수평선은 장엄한 일출을 예고하듯 어둠의 장막을 걷고 점점 붉게 물들고 있었다. 아침 해가 곧 떠오를 것 같아 서둘러 천왕봉에 올라섰다.

 

로터리산장과 장터목산장에서 밤을 보내고 먼저 올라온 사람들 모두가 동쪽 하늘에 시선을 모으고 해가 하늘로 떠오르는 소리라도 들으려는 듯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니 긴장한 대지가 새벽을 알리는 속삭임을 듣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칠선계곡에서 세차게 불어오는 찬바람을 병풍처럼 막아주는 천왕봉을 등지고 해뜨기를 기다리는 남녀노소 모두의 얼굴은 세상의 모든 고뇌에서 해방된 듯 너무나 평화롭고 경건해 보였다. 어느 누구의 얼굴에도 어두운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가 밝고 환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천왕봉에 오른 지 30여분만인 6시 44분.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삼대에 적선을 하여야 볼 수 있다.’던 그 천왕봉에서의 장엄한 일출을 본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의 입에서 각양각색의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박수를 치는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일출을 보여주기 위해 밤새 바람은 그렇게 휘몰아쳤던 것이었을까. 해가 뜨자 온 세상을 삼킬 듯이 울부짖던 바람도 잠시 기세가 꺾이는 듯했지만 칠선계곡에서 올라오는 냉기(冷氣)만은 여전히 차가웠다. 추위 때문에 정상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50~60명이 한꺼번에 장터목 쪽으로 하산을 서둘다보니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몇몇 초등학생은 추위에 견디지 못해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집에 있는 아버지를 산장까지 올라오라며 떼를 쓰는 아이도 있었다. 통천문을 내려서자 바람이 나뭇가지 위에서 윙윙거렸지만 한기(寒氣)는 꽤 누그러져 모두의 얼굴에 조금씩 화색이 감돌았다.

 

장터목까지 보통 40~50분이면 충분한데 이날은 1시간 이상 걸렸다. 산장 취사장 안은 장터처럼 붐볐다. 한쪽 구석에 서서 아침을 해먹고 커피까지 마시며 1시간 쯤 쉰 다음 세석산장으로 향했다.

 

연하봉과 삼신봉 어디를 보아도 능선에는 단풍이 없었다. 2~3일전에 비가 온데다 갑자기 춥고 바람이 휘몰아쳐 그런 것 같았다. 천왕봉에서 장터목까지 가면서 전혀 느끼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추위에 정신이 팔려 그랬던 것 같았다.

 

가을철 연하봉 주변을 지나칠 때면 언제나 혼자 앉아 산을 곱게 단장한 단풍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즐기던 바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예년과 다름없이 그 곳에 올라보았으나 백무동 쪽 능선과 계곡의 단풍도 볼품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곳에 오래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었다. 선 채로 바로 내려와 발길을 재촉했다.

 

촛대봉 능선에 올라서니 세석평전의 모습이 옛날과는 확연히 달랐다. 등산로를 잘 다듬어 놓아서가 아니다. 구상나무가 많이 자랐고 철쭉도 둥치가 더 커 있었다. 옛날 흙을 드러냈던 자리에도 나무와 풀들이 많이 자라 지형이 변한 것처럼 느껴졌다. 생태계가 회복되고 있음이 역력했다.

 

그런데 산장 주변에 자질구레하게 늘어선 군사시설 등 불필요한 시설들이 눈에 거슬렸다. 그리고 산장과 화장실 등이 취수장보다 위쪽에 있어 멀지 않은 장래에 식수가 오염되지 않을까도 걱정되었다. 기우(杞憂)이기를 바랄뿐이었다.

 

아침을 먹은 지 2시간 밖에 안 됐지만 어쩔 수 없이 세석산장에서 점심을 해 먹어야 했다. 다음 식수가 있는 곳은 덕평봉 아래 선비샘 뿐이기 때문이었다.

 

 서울서 왔다는 50대 여인들과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내가 가지고 간 마른 멸치가 맛있다면서 주섬주섬 주워 먹는 데는 대책이 없었다. 멍청하게 쳐다볼 수밖에…. 식사를 하며 1시간 쯤 쉰 다음 다시 영신봉으로 향했다.

 

왼 쪽으로 의신계곡을, 오른 쪽에는 백무동을 두고 영신봉을 내려서니 계곡에는 아직 단풍이 조금 남아 있었다. 의신계곡을 향해 내가 자주 앉아 쉬던 바위에 올랐다. 오랜만에 왔으니 커피라도 끓여 마시면서 그 아름다웠던 옛 기억을 더듬어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바위 위에는 누군가 쉬면서 감을 깎아먹은 듯 감 껍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다음에 올 사람을 조금도 배려할 줄 모르는 이런 등산객이 지금도 있나하는 생각에 부아가 치밀었다. 그대로 발을 돌렸다.

 

얼마안가 급경사 지대에 들어서니 나무 계단을 만들고 있었다. 누구나 편하고 안전한 등산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반갑기는 했지만 팽팽하게 긴장하면서 오르내리던 곳이 또 한곳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아쉽기도 했다.

 

칠선봉을 지나 덕평봉 선비샘에 이르니 2시가 넘었다. 두어 시간 넘게 걸어온 셈이었다.

 

그런데 배낭을 내려놓고 물을 마시려니 잘 나오던 물이 갑자기 수량이 줄어들며 어린애 오줌 줄기처럼 졸졸거리기 시작했다. 하도 신기하여 5분 이상이나 지켜보아도 역시 그대로였다.

 

 어쩔 수없이 물을 받아 마시고 배낭을 메고 일어서니 물은 다시 콸콸 쏟아졌다. 머리를 갸웃거리며 선비샘을 뒤로했다.

 

건너다보이는 벽소령을 향해 한참 걷다보니 도로가 나왔다. 백두대간 마루금을 타는 것이니 당연히 능선을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능선 길의 입구를 찾았으나 아무리 보아도 명확하지 않았다. 3년 전인가 왔을 때는 길이 있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백두대간을 뛰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이 능선을 포기한 듯하여 한편으로 서운하기도 했지만 남들처럼 걷기 편한 도로를 따라 벽소령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널찍하고 잠자리가 편한 벽소령산장에서 오늘의 산행을 마감할까 하다가 조금이라도 거리를 벌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잠깐 쉬었다가 연하천산장으로 발길을 향했다. 3.4km라면 2시간이면 충분할 것도 같았다.

 

그러나 나서고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형제봉까지는 용케도 1시간 정도로 걸었으나 형제봉을 지나면서 발길이 더뎌지고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다.

 

15분 쯤 걷고 쉬기를 반복하니 어깨는 더욱 아파왔다. 이대로라면 1시간 잡았던 거리가 2시간은 넘게 걸릴 것 같았다. 연하천산장 부근의 철조망 옆으로 난 길이 왜 그렇게 멀게 느껴지는 지. 산장 앞에 배낭을 내려놓으니 5시 28분이었다. 예상보다 30분이나 더 걸린 셈이었다.

 

무슨 휴일이 아닌데도 여느 때와는 달리 산장이 붐볐다. 대구 계명대 학생들이 미리 예약해 몰려왔기 때문이란다. 달리 방법이 없어 산장 관리인에게 하룻밤을 신세져야겠다니 그러라고 했다.

 

대답이 시원시원해서 좋았다. 대신 칼잠을 자야한단다. 계명대 여학생들을 모두 이층으로 올려 보내고 아래층 북쪽에 11명, 남쪽은 10명으로 잠자리가 정해졌다. 나는 남쪽의 안쪽 가에 자리 잡았다.

 

저녁을 해 먹고 7시 조금 지나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눕자마자 코를 고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가만히 두면 끝없이 재잘거릴 이층의 여대생들과 아래층의 지쳐있는 산 꾼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졌다.

 

육두문자(肉頭文字)까지 오가는 듯했다. 전날 아침 집을 나선 후 잠이라고는 로터리산장에서 겨우 2시간 정도 잔 나는 비몽사몽(非夢似夢)하는 사이에 잠이 들어 버렸다.

 

◇산행메모 2002년 10월 22일 04:15 로타리산장 출발, 06:15 천왕봉 도착, 06시 44분 천왕봉 일출, 06:50 천왕봉 출발, 08:45 장터목산장 도착 (아침식사 1시간), 09:44 장터목 출발, 10:30 세석산장 도착 (점심 1시간 20분), 11;48 세석출발, 15:05 벽소령산장, 17:50 연하천산장 도착.      <제휴사= 경북제일신보, 이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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