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18-06-18 오후 4:59:00
기사
검색
[로그인] [회원가입]
회사소개 | 후원하기 | 사업영역 | 기사제보 | 취재요청 | 명예기자신청 | 광고문의 | 콘텐츠
뉴스
동영상뉴스
청도
전국
정치
인사/동정
화제의인물
출향인소식
탐방
건강과 생활
명예기자
오피니언
독자기고
칼럼/사설
자유게시판
여론광장
올레tv채널경북
다시보기
경북의창
열린초대석
행사중계
문화&예술
렛츠고시골
현장리포트
cdi칼럼
논설위원
2009-09-09 오전 10:17:37 입력 뉴스 > 탐방

[탐방]백두대간 단독산행을 하면서
65세 청년 산쟁이 백두대간 단독 종주기



<1>산행을 시작하면서

백두대간 도상거리 700km 단독행.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었다. 그러나 ‘우리 국토의 척추를 너무 얕잡아 보는 돌출행동’이라고 비웃을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 이종길

더구나 30이나 40대도 아닌 시세말로 ‘지공(地空)’의 나이라고 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무엇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빈둥거리지 못하는 별난 성정(性情) 때문에, 아니 그보다는 조금 한가해지니까 언제나 ‘오라고 손짓하는 산’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한동안 오르내리지 못했던 산에 다시 마음을 빼앗겼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산은 내가 아름다움에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편이다. 소설이나 그림은 볼 때뿐이다. 하지만 산은 다르다. 쉽게 심취(心醉)할 수 있고 그 여운은 오래 간다. 높은 산과 낮은 뫼를 구분하지 않는다.

 

산을 높이로 좋고 싫음의 판단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치졸하지 않을까. 마치 사람을 키로 평가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산마다 특성이 있으니 금정산과 같은 낮은 산이라고 하더라도 지리산과 꼭 같이 사랑한다. 나에게 등산은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다.

 

산은 나를 삶의 온갖 고뇌와 고독, 무력감에서 해방시켜준다. 등산은 육체적 고통이 크면 클수록 나의 영혼을 더 큰 충만감으로 살찌게 한다.

 

아니 여기 평지의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행복감과 만족감, 자유와 내가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새로운 기쁨, 이것들은 산에 오르기만 하면 산이 언제나 나에게 안겨주는 선물들이다.

 

등산은 또 관객이 없는 스포츠라는 점에서 나는 등산, 특히 단독행(單獨行 솔로)을 더욱 사랑한다. 누군가가 그의 등산 행위를 바라보는 순간부터 잘하건 못하건 자신을 관찰하고 판단하려는 사람의 눈에 자신을 맞추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면 그의 모든 행동은 참된 자기에서 멀어지게 된다. 관객을 갖는다는 것, 즉 관객에게 아부하려는 생각을 갖게 된다는 것은 거짓에 그와 산을 내팽개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동반(同伴) 산행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동반인과 함께하는 그 산행을 원만하게 끝내려고 자신보다 동행자를 더 배려하다 보면 자신의 산행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혼자 산행하고, 산에서 어쩌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산 꾼을 만난다고 해도 끝까지 함께 가는 일은 드물다.

 

새로 만난 산 친구가 쉬든 말든 나는 내 페이스대로 산행하는, 즉 같이 행동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내가 이전에 올라보지 못한 수많은 산들이 늘어서 있는 미지의 세계, ‘백두대간 마루금’을 혼자 종주하기로 한 것도 이렇게 누구의 방해도 없는 산행의 자유를 누리면, 산의 아름다움 속에 실컷 취해 보고자함이었다.

 

어떻든 한두 산 친구들에게 백두대간 단독 종주계획을 귀띔했더니 “아직도 그럴 만큼의 마음의 여유와 건강을 가졌다니․․․”라면서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었고, “무엇을 지원하면 좋겠느냐”며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난서는 후배도 여럿이었다.

 

 이렇게 백두대간의 산과 뫼를 잇는 긴 능선을 혼자서 밟아보겠다고 마음을 정하고 나니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너무 많았다. 우선 그동안 사용하지 않아 집안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등산장비부터 찾아 모았다.

 

단독산행, 특히 3~4일씩 걸리는 단독행이라면 그 성부(成否)는 아무래도 무게와의 싸움이었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던 장비의 무게부터 하나하나 챙겨 나갔다. 내가 아끼는 1~2인용 살레와 텐트는 너무 무거워 텐트는 새로 사야했고, 소형 코펠은 너무 낡아 새로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배낭은 둘째 아들에게 주었던 60ℓ짜리 로우 배낭을 빌려왔더니 새 밀레 배낭을 사주면서 자기가 쓰던 것이라며 되가지고 가 새로 산 꼴이 되었다. 헤드램프와 가스버너는 신중곤 후배가 최신형의 아주 가벼운 것을 선물했다.

 

카메라도 아예 라이카 디지털로 바꾸었다. 지도는 지리산과 설악산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새로 구입해야할 것이 많았는데 석봉산악회 황계복 회장에게서 코스 조사용으로 빌린 월간 ‘사람과 山’ 창간 10주년 199년 11월호 별책부록인 ‘백두대간 지도’를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산에 다시 오르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준비를 시작해 장비를 거의 갖춘 것이 2002년 5월 중순이었지만 산행 날짜가 영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성지곡 어린이 대공원에서 은동굴까지, 그리고 영취산과 신불산능선에서의 두어 차례 하중(荷重)훈련을 할 계획도 세웠으나 내일 모레하면서 미루기만 했다.

 

그동안 계속해온 조기 등산조차 게으름을 피웠다. 그러니 자연히 체중만 불고 배만 나와 생활이 불편하기까지 해 7월 하순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다시 조기 등산을 시작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산행 시작을 차일피일(此日彼日)하다 겨우 집을 나선 것이 2002년 10월 21일이었다. 새벽부터 부산하게 짐을 꾸렸으나 비상식량 등 일부 식품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부탁해둔 알파미를 찾으려고 부산일보에 갔다가 배낭이 아무래도 무거울 것 같아 1인용 텐트를 황 회장에게 맡겨둔 채 서부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12발 진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적어도 2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으나 1시간 5분 만에 진주에 도착했다. 처음 지리산을 찾을 때문 해도 부산에서 진주까지 거의 하루가 걸린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아닐 수 없었다.

 

터미널 부근의 한 식당에서 점심 요기를 하고 오후 2시 중산리 행 버스를 탔더니 등산객이라고는 나를 포함해 두 명뿐이었다. 단풍철이라 붐비면 어쩌나하고 걱정했는데 그마나 다행이었다. 1시간 13분 만에 중산리에 도착하고 보니 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졌다.

 

시작부터 날씨가 좋지 않아 걱정이었다. 특히 스웨터를 미처 챙겨 넣지 못한 것이 아무래도 찜찜했다. 지리산이 초행이라는 대구 사나이와 함께 열심히 걸어 매표소에 도착하니 3시 45분이었다. 약 30분 걸린 셈이었다.

 

오랜만에 무거운 배낭을 지고 걸어보는 데도 이 정도의 시간이라면 ‘앞으로 산행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날 밤 주당(酒黨)들과 어울리느라고 카메라 충전을 못해 매표소 앞의 인심 좋은 토지산장 식당에서 충전을 끝내고 저녁을 먹은 것이 5시 30분.

 

야간 등산 금지로 일몰 2시간 전까지만 입산시키고 그 이후에는 안 된단다. 그래도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겠느냐면서 사정해 보았으나 매정하게 한마디로 거절했다.

 

 야간 산행을 못하게 하는 것이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니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려면 새벽 2시에 올라가야 할 것인데 자연보호라는 점에서 보면 새벽에 올라가는 것과 초저녁에 올라가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식당의 문을 닫으면 밖의 의자에서 시간을 보내다 새벽 2~3시에 출발할 작정으로 식당 안에서 책을 읽고 있는 동안 6팀 30여명의 등산객들이 올라왔다. 모두가 다음날 아침 일찍 등산을 시작하겠다면서 잘 곳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야간 산행을 하겠다고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다 싶었다. 여러 명이 몰려 있다가 새벽 등산을 하느라고 왁자지껄하면 새벽 입산도 못할 것 같아 걱정이었는데․․․. 식당 아주머니가 문을 닫아야겠다고 했다.

 

시계는 밤 11시 2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밖으로 나왔다. 매표소에는 입구 등을 밝혀 놓았을 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배낭을 메고 도둑고양이처럼 발소리를 내지 않고 지나가면서 보니 숙직자는 곯아떨어진듯 했다.

 

조금은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그것은 자연보호를 위해 야간 산행을 못하게 하는 것에 협조하지 못한 데도 있었지만, 가능한 한 야간 산행을 하지 않겠다는 나의 백두대간 종주 기본원칙이 첫 출발부터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우천 허만수님의 추모비를 뒤로하고 산길로 들어섰다. 초입은 산길이라기보다는 신작로라고 해도 좋았다. 어느 산 친구의 표현대로 ‘초등학교 학생이라도 편히 갈 수 있는’그런 길이었다. 음력 보름인 듯 달이 너무나 밝았다.

 

짙은 숲 속이 아니면 헤드램프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 숲의 그늘이 길게 드리워져 있어 길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컴컴한 곳에서만 잠깐씩 헤드램프를 켰다. 처음 사용해 보는 놈이지만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밝고 가벼워 좋았다.

 

위로 올라갈수록 바람은 세상을 다 날려 보낼 듯이 더욱 거칠게 포효하고 있었다. 법계사까지의 길이야 하도 자주 다녀 눈을 감고 알 수 있을 정도니 걱정할 것이 없었다.

 

더구나 옛날 같으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조심스레 걸었어야 했던 위험 지역들도 모두 계단을 만들거나 다리를 놓아 피로를 덜어 주었다. 특히 망바위 바로 아래의 급경사 지역에는 나무 계단으로 이어져 있어 오르기에 너무나 편했다.

 

로터리산장에 도착하니 1시 50분. 먼저 와 코를 골며 자는 사람들이 잠을 깰세라 조용조용 빈자리를 찾아 늦은 잠을 청했다.

 

 

○ 산행메모 2002년 10월 21일 낮 12시 서부시외버스터미널 진주행버스 출발, 13:05 진주도착(점심식자 30분), 14:00 중산리행 버스 출발, 15:13분 중산리도착 15:45 중산리 등산로 입구도착, 23:25 등산시작, 22일 01:51 로터리산장 도착

                                

 

  <온라인미디어 세상- 청도인터넷뉴스가 항상 앞서갑니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기사제보 cdinews@nate.com

  ☎ 070-7150-6029, <한국지역인터넷언론협회 청도인터넷뉴스>

 

cdinews (cdinews@nate.com)

       

  의견보기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
  의견쓰기
작 성 자 비밀번호
스팸방지  
※ 빨간 상자 안에 있는 문자(영문 대소문자 구분)를 입력하세요!
의견쓰기
(0)
내용은 400자 이내로 적어야합니다.
기사와 무관한 글은 임의로 삭제 될 수 있습니다.
 
[6.13지방선거] 경주,..
[6.13지방선거] 이경..
[6.13지방선거] 안상..
(재)청도우리정신문..
청도군, 공무원 대상..
2018년 충효사·한국..
“선조들의 구국항일..
제63회 현충일 추념식..
청도서 금복숭아 출하!
“불교·사회 통합....


방문자수
  전체 : 34,969,747
  어제 : 22,223
  오늘 : 10,898
청도인터넷뉴스 | 경북 청도군 청도읍 한내길 178  | 제보광고문의 054-331-6029
회사소개 | 후원안내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인터넷신문 등록일 2009.9.25 | 등록번호 경북 아 00102호
발행·편집인 양보운 | 청소년보호책임자 양보운
Copyright by cdinews.co.kr All rights reserved. E-mail: cdinews@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