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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8-2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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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산남의진열전(山南義陣列傳) 243

조충래 전원생활체험학교장 본보 논설주간

기사입력 2026-08-26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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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지혜와 자비, 또는 지혜와 복덕 두 가지를 갖추어 양족존(兩足尊)이라 합니다. 부처님을 모신 절이 수행처이면서 동시에 복전(福田)이 되는 이유입니다. 이를 증명하는 경전이 『자타카-본생경(本生經)』인데 과거 여러 생의 수행 및 작복(作福) 과정을 설화 형식으로 설하고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수행 이야기 하나, 진리를 얻기 위해 목숨을 던진 전생 이야기를 『열반경』에서 찾아 소개합니다. 설산동자는 고오타마 붓다가 아득한 과거의 세상에서 보살행(菩薩行)을 닦을 때 눈 쌓인 산에서 수행하던 시절의 이름입니다. 설산동자는 오로지 해탈의 도를 구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설산에서 고행을 하였고, 이를 본 제석천(帝釋天)은 설산동자의 이와 같은 구도의 뜻을 시험하고자 아주 무서운 살인귀인 나찰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는 설산동자에게 가까이 가서 지난날에 들었던 부처님의 게송 가운데 “제행무상(諸行無常-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항상하지 아니하니) 시생멸법(是生滅法-이것이 우주 만물의 생멸법이라)”는 게송을 읊조립니다. 이 게송을 듣는 순간 설산동자는 깨달음의 등불이 바로 눈앞에 다가오는 것만 같아 게송을 설한 이를 찾아 주위를 살펴보니 거기에는 무서운 나찰이 서 있었죠. 설산동자가 나찰에게 묻습니다. “지금 이 게송을 읊은 이가 그대인가요?” “그렇다.” “그대는 어디서 과거 부처님께서 설하신 게송을 들었습니까? 나에게 그 나머지를 들려주소서.” “나는 벌써 며칠이나 굶어 허기에 지쳐서 말을 할 기력조차 없다네.” “그대는 무엇을 먹나요?” “내가 먹는 것은 오직 사람의 살이고, 마시는 것은 사람의 뜨거운 피다.” 설산동자가 한참 동안 생각하더니, “좋습니다. 만약 나머지 게송을 들려주신다면 나의 이 몸뚱이를 기꺼이 그대에게 드리겠습니다.” “어리석도다. 겨우 여덟 글자의 게송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려 하는가?” “그렇습니다. 게송의 나머지 반을 들어서 깨달음을 얻는다면 아무런 후회도 미련도 없습니다.” 이에 나찰은 나머지 게송을 읊습니다. “생멸멸이(生滅滅已-생멸의 법을 소멸하는 경지에 이른다면) 적멸위락(寂滅爲樂-모든 번뇌가 사라진 열반의 즐거움을 얻게 되리라)” 그 게송에 큰 깨달음을 얻은 설산동자는 세상에 이 진리를 전하기 위해 바위나 돌, 나무 등에 게송을 새기고서 높은 바위 위로 올라가서 나찰이 있는 곳을 향해 허공으로 몸을 던집니다.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이러한 수행을 여러 생을 거듭하였고 마침내 고오타마는 이 사바세계(娑婆世界-고통과 번뇌가 가득하여 참고 견뎌야 하는 세상)에 오셔서 어떠한 것에도 걸림이 없이 온전한 지혜를 갖춘 붓다, 석가모니가 되신 것입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불교사를 더듬어보면 많은 선지식들이 이 위법망구의 삶을 모델로 삼아 실천 수행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정환봉
자가 기문이고 호는 농해로 동엄공의 동생이다. 성품이 굳세고 강하면서 도량이 넉넉하고 분별심이 있었다. 일 벌이기를 좋아하며 계획 세우기를 잘하였다. 평소 형제들 간의 우애가 남다르고 자식과 조카들을 가르침에 있어서 촌위의 멀고 가까움에 대한 구별이 없었다. 급기야 천하가 크게 어지럽게 되자 집안 식구들을 동해안 지방에 머무르게 하고 자신은 충청도 황간에 사는 사람이라 말하고 다니면서 붓과 먹을 파는 장사꾼으로 가장하고 몰래 각 지역과 연통하여 적의 형세를 정탐하였다. 군수 물자를 사들여 그것으로 산남의진의 뒤를 도와주었다. 산남의진이 해안 지역에서 여러 번 적과의 전투에서 이겼던 것 또한 환봉이 펼친 계책에 힘입은 것이다.
뒤에 환봉이 몰래 도왔다는 사실이 누설되어 적에게 붙잡혔는데 통역관인 정홍석의 도움이 컸다. 홍석은 경주에 사는 사람으로 동엄공이 산남지방을 도찰(都察)할 때 홍석의 아버지가 오장(伍長)1)이 되어 깊은 은혜를 입었던 사람이었다. 홍석이 밖으로 보이는 얼굴 모습과 내면의 마음으로 힘을 다해 정환봉의 무죄를 변명한 덕분에 환봉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홍석은 익히 조씨(祖氏)의 결초보은(結草報恩)2)에 관한 책을 읽었던 사람인가 보다.
〈원문〉 
鄭煥鳳은 字屺이요 號聾海라 東公之弟也라 性剛勁有量하고 又有浩辯하고 好事善謀하다 素以友愛異人하야 敎子姪輩無分門之別이러라 及天下大亂에 留家率於東海等地하고 自言忠淸道黃澗居人하고 假裝筆墨商하야 潛通各地하야 偵探敵勢하며 求買物資하야 以輔軍後하니 義陣이 到沿海等地하야 累有勝捷者는 賴此引策也러라 後에 事泄하야 被執於敵하니 通譯官鄭弘錫은 慶州人也라 東公都察三南時에 弘錫之父爲伍長하야 深被恩澤之人也라 弘錫이 以外面內心으로 極力辯明하야 無事得歸하니 弘錫은 熟讀祖氏結草報傳者矣로라 
<山南倡義誌 卷下74p>

鄭煥鳳 義士 略歷(정환봉의사 약력)
鄭煥鳳(정환봉)은 字(자)는 屺文(기문)이요 號(호)는 聾海(농해)요 東广先生(동엄선생)의 親弟(친제)라 性稟(성품)이 剛勁有量(강경유량)하고 友愛(우애)가 특별하여 子侄輩(자질배)를 분문별(分門別)이 없도록 교훈시켰다 天下(천하)가 大亂(대란)하매 동해 등지에 이주하여 충청도 황간이 고향이라 하고 필묵상으로 변장하여 각지를 정탐하여 기밀을 정보하고 물자 보급에 노력하였다 본부가 연해 지방에서 여러 번 승리한 것은 이에 도움이 있었다 후에 왜적에게 피금되어 문초를 받을 때 통역관 鄭弘錫(정홍석)의 父親(부친)은 東广先生(동엄선생)이 三南(삼남)을 都察(도찰)할 때에 伍長(오장)으로 있었다 그 인연으로 弘錫(홍석)은 극력하게 주선하여 석방이 되었다 日月(일월)향지에 公(공)은 돈 五百(오백)량과 군량미 一百石(일백석)을 원조하였고 하늘에 기도하는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山南義陣遺史533p>

cdi (cdinews@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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