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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9-09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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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문화유산 재발견] 434년 전 9월 2일, 이날 도대체 영천에서 무슨 일이...

남애경 본보 논설위원

기사입력 2026-09-02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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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지역 역사박물관으로 등록된 영천역사박물관은 영천의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를 다룬 유물과 전시물이 배치되어 있는 전시, 교육 전문 박물관이다. 영천역사박물관 설립자인 지봉 스님은 영천 지역 역사에 초점을 두고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현재 4만여 점의 지역 역사 중심의 문화유산을 수집해 연구하고 있다. 
영천역사박물관의 대표 소장유물로 세계 최초 상업용 일간신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민간인쇄조보(521호 등재) 등 지역의 유적과 유물을 통해 영천의 전통과 생활상을 알 수 있도록 다양한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본보는 영천역사박물관과 함께 위대한 지역문화유산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영천의 역사적 사건이 중국과 일본에 보고된 사례는 이 일 외에는 없다. 
『선조실록』 명나라 발송 자문 기록: “적도 1천여 명이 영천군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권응수 등이 군사 2천여 명을 거느리고 성을 공격해 불을 지르자 적들이 놀라 무너졌습니다. 적의 목 베어 획득한 수급이 517과(顆)에 달합니다.”라고 영천의 지명과 전투 상황이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임진왜란 당시 병조판서를 5번이나 지낸 백사 이항복은 그의 저서 『백사별집』에서 이 전투를 지극히 높게 평가했다.
“전쟁이 끝나고 10년이 지나도 사람들은 육지에서는 영천성 전투, 바다에서는 명량대첩을 최고의 전투로 손꼽으며 입에 올린다.”라고 기록하여 영천성 수복의 가치를 전하고 있다. 
현재의 국가기록원으로 볼 수 있는 당시에 ‘편수청’에 보고된 의성 유생 신흘이 영천의 의병을 직접 와서 조사한 조사보고서인 『난적휘찬』에는 “이 승리가 육지에서 최초의 승리이자 조선 백성들에게 ‘우리도 왜군을 이길 수 있다’는 엄청난 자신감을 심어준 계기였음을 증명했다.”고 보고 했다.
당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는 영남좌도 의병장이자 신녕의장인 권응수가 1592년 7월 24일 손덕침에게 영천성수복전투에 참여를 부탁하는 편지를 보내 내용을 한번 살펴보자
우리나라에 불행이 닥쳐, 섬 오랑캐들이 여러 성을 점령하고 살육과 파괴를 일삼고 있습니다. 권응수는 능력을 고려치 못한 채, 몇 사람을 모아 감히 적을 괴멸시킬 계획을 마련하였습니다.
초유사 김성일 공께서 부족한 저에게 여러 병사들을 통솔하게 하니 여러 고을에 인사들이 모여와 세 번이나 어려움을 겪으면서 적을 막아내는 가운데 그들의 교활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적은 수의 군사로 적을 막아내는 모험을 하려 합니다.
요즘 들어보니 형(손덕침)께서는 그곳에서 의병을 일으켜 여현(礪峴)의 적을 막아낸다고 하는데,  창암(倉巖 7월 12일)의 승첩이 가장 장쾌합니다. 지금 병력의 사정은 어떠한지요. 일찍이 들으니 많은 군사들과 더불어 대기 상태에 있다고 하는데 이곳으로 와서 힘을 합해 이 기회를 잃지 않게 함이 어떨까요?
오직 전삼달 군의 좋은 전갈을 기다리겠습니다.

임진 7월 24일 권응수(수결)
이 편지에도 군사가 너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군사학에서 공성전(城을 공격하여 빼앗는  전투)은 방어자가 성벽이라는 강력한 엄폐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격 측이 최소 3배에서 많게는 8~10배의 압도적인 병력 우위를 가져야만 승리를 바라볼 수 있는 가장 불리한 전투이다.
진주대첩과 행주대첩은 견고한 성과 진지에 의지해 왜군의 공격을 막아낸 ‘수성전(守城戰)’이었던 반면, 영천성수복전은 정반대로 의병들이 ‘공격자’가 되어 왜군이 장악한 성을 빼앗은 ‘공성전(攻城戰)’이었다
당시 영천성 안의 왜군은 동북아세아에 가장 뛰어난 전투병이 약 1,000여 명이었고, 영천 의병(창의정용군)은 약 3,970여 명(7월 26일 밥을 먹은 인원)이었습니다. 군사학적 공식인 ‘10배의 법칙’에 턱없이 부족한 겨우 3.5배의 병력으로 어떻게 철옹성 같은 공성전에서 대승을 거둘 수 있었을까? 
공성전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성벽 위에서 쏟아지는 적의 원거리 공격(조총 등)이다. 창의정용군은 이를 정면 돌파하지 않고 고도의 심리전과 정보전을 먼저 펼친 것이다.
(이어 다음 호에는 불리한 싸움을 승리로 이끈 전략 전술을 소개합니다)
 

cdi (cdinews@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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