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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9-16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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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고깔을 쓴다

한 관 식 작가

기사입력 2026-09-1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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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똥구리(35)
촌장 벽서가 큰 비녀상궁 유하를 안채로 모신 까닭은 이러했다. 두말없이 사랑채로 모셔 극진한 대접을 해야 옳으나, 안채는 사랑채보다 안쪽에 위치하며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는 내행랑이나 중문간채 등에 의해 공간이 구분되어 있었다. 안손님이 아니면 안채까지의 출입이 제한되었으며 일반적인 접객은 사랑채에서 이루어지기 마련이었다. 곧 안채는 다채로운 일상생활을 관장(官場)하는 곳이고 사사로운 소문의 길목을 자르는 역할도 가능했다. 사랑채에 손님이 왔을 때에도 음식 장만은 안채에서 이루어져 신속을 요할 수 있는 이점(利點)과, 귀머거리 삼 년에 벙어리 삼 년의 시집살이 고됨으로 말을 아끼고 인내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런 마음을 큰 비녀상궁이 알아달라며 쉽게 내어주지 않는 안채의 고집스러움으로, 반드시 국모의 간택을 바라는 절절함도 배어 있었다. 안채와 사랑채와 행랑채와 곳간채와 문간채는 덩달아 한 몸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은 상궁 돌기가 손에 든 대나무 회초리는, 반드시 굴복과 성사를 주입시키고 있었다. 저 가늘고 매운 대나무의 가지 끝은 돌기의 움직임이 없어도 파랗게 떨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안채에 들어선 큰 머리상궁 유하는 아랫목에 정좌하고, 고개를 조아린 채 서있는 벽서를 향해 강단 있는 일갈로 휘어잡았다. 
“촌장의 뜻은 충분히 헤아렸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온 세상을 정갈하게 하는 저 눈송이가 그치기 전에 간택을 끝내야 하니 세 따님을 불러주시죠. 그리고 이 방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도 절대 기웃거리시면 안 됩니다. 이미 세 따님 중 한분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방해를 받을시 다른 부락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밖으로 나온 촌장 벽서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딸년만 생산하는 내자(內子)를 탓했던 한세월이 화끈거렸고, 커갈수록 피어나는 미색에 딸년들에게 걸 맞는 배필(配匹)을 향한 조바심이 무색해졌다. 셋 중 하나라도 왕실과 사돈만 맺는다면 남은 둘도 일사천리로 떵떵 거리는, 사돈관계는 순조로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양지부락의 위세보다 굼돔부락의 광명이 더 찬란하다고 누가 부정하겠는가. 어깨춤을 추며 대기하고 있던 세 딸을 안채로 들여보냈다.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얼씬도 하지 말라는 큰 비녀상궁의 다짐을 기억하며 사랑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보다 더 먼 곳에서 크고 탐스런 눈송이가 천지를 뒤덮고 있었다. 하늘이 보인다면 그곳은 눈송이로 감싸주면서, 착하고 청순한 마음 한자리를 내주었을 것이다. 아마 세상천지의 시작을 알릴 때 저렇게 공평하게 모두들 나눠서 가져갔을 건데, 빼곡한 숲은 하늘을 가리고 본연의 방향마저 흐리게 되었을 때 악(惡)은 자라 깊은 계곡으로 흘렀을 게다. 그것이 실체마저 부정하는 안개의 분명치 않음이고 시기와 질투와 전쟁의 서막이었다면 하늘로 전해 받은 눈 덮인 산야를 어쩌랴. 인생의 마지막 날을 택한다면 지금부터 시작된 하늘이 어디고 땅이 어디인지 모를 눈빛 속으로 던져주어라. 
큰 비녀상궁은 들창으로 전해지는 한 움큼의 풍경 속에서 세상의 경지를 읽었고, 한쪽으로 치우치는 본연의 마음을 바로 세워 첫째 보명과 둘째 탄순과 셋째 혜윰을 오래도록 말없이 쳐다보았다. 어느 시점에서 작은 상궁 돌기가 대나무 회초리를 방바닥에 세 번 내리치며 약간의 위압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딸의 등 뒤에서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를 던졌다.
“속 고쟁이도 남김없이 벗어야 한다. 불응 시에는 회초리가 용서치 않을 거야!” -계속

cdi (cdinews@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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