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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9-16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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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연재] 창빈안씨의 묘

양 삼 열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문화대학원 교수 풍수지리학 박사

기사입력 2026-09-16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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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동작구 국립현충원에 가면 조선조 제11대 임금인 중종의 후궁이자 선조의 할머니가 되는 창빈안씨(1499~1549)의 묘가 있다. 그는 1499년(연산군 5)에 태어나 9살 때 궁녀로 들어가 20세에 중종의 승은을 입고 후궁이 되었으며 슬하에 영양군, 덕흥군, 정신옹주 등 3명을 낳았다. 특히 덕흥군 이초는 훗날 제14대 왕인 선조의 아버지이므로 창빈안씨는 선조에게 친할머니가 된다. 12대 인종은 후사 없이 즉위 8개월 만에 30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이복동생인 명종도 후사 없이 위독해지자 당시 실세였던 영의정 이준경과 인순왕후의 영향으로 선조가 왕위계승자로 지목되었다. 창빈안씨의 둘째 아들인 덕흥군도 비록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덕흥군의 셋째 아들 하성군이 선조로 즉위하면서 창빈안씨는 왕의 직계 조상이 되었다. 이로 인해 그의 묘소는 단순한 후궁의 묘가 아닌 왕실의 중요한 역사를 담은 상징적인 공간으로 재조명되었다. 창빈안씨는 사망 후 처음에 경기도 양주시 장흥에 안장되었으나 풍수적 결함을 이유로 이듬해 1551년(명종 6)에 현재의 국립현충원 경내 후방으로 이장하였다. 이장 2년 후에 덕흥군의 둘째 아들인 선조가 태어났으니 일부에서는 이 묘소의 음덕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곳은 본래 한양 도성 밖의 자연스러운 야산 지대였으며 조선 왕실 주변의 인물들이 묘지로 많이 조성했던 풍수적 길지로 인식되던 곳이었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이 지역에 국립서울 현충원이 조성되면서 창빈안씨 묘역은 자연스럽게 현충원 경내에 포함되게 되었다. 이곳으로의 이장은 선조의 아버지인 덕흥군이 왕실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졌으며 왕실 묘역의 격식을 갖추고 있어 동작릉(銅雀陵)이라 불리기도 했다. 오늘날 동작구와 동작동의 지명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창빈안씨의 묘가 이곳으로 이장된 후에 그의 후손들이 조선 왕실의 왕통을 이어갔으니 일부에서는 이 묘소를 군왕 지지의 명당이라고도 한다. 
이곳의 산세는 한남정맥 용인시 백운산(560m)에서 북북서쪽으로 뻗어 올라간 지맥이 신림동 관악산(632m)에 이르고, 여기서 북쪽으로 갈라져 나온 지맥이 남현동 고개와 까치산공원을 지나 국립서울현충원의 주산인 동작봉(174.8m)으로 이어진다. 동작이란 산세가 공작이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이고, 이 일대의 돌 색깔이 구리 빛을 띤 것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작봉에서 좌우로 뻗은 능선은 병풍을 치듯 묘역 전체를 감싸주고 앞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이다. 창빈안씨 묘의 주룡은 동작봉에서 우측 두 번째 봉우리에서 내려왔다. 첫 번째 봉우리 아래에는 박정희 대통령 묘가 있고, 두 번째 맥은 크게 과협을 한 후 장군제1묘역을 지나 북쪽으로 올라가는데 그 끝자락에 창빈안씨 묘가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내청룡 자락에는 이승만 대통령 묘, 외청룡 자락에는 김영삼 대통령의 묘가 있고 우백호 자락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묘가 있다. 그러므로 동작릉이 지기가 뭉친 정혈이고 나머지 묘의 능선들은 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준다. 그러나 한강 물이 국립묘지 전체를 환포 해주지 못하고 반궁을 하고 있어 풍수적 결함이라 할 수 있다.

cdi (cdinews@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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